성결목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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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목회론(6과)
신성철 2014-09-19 추천 0 댓글 0 조회 104

성결목회론(6과)
제목 : 어떻게 해야 성도들로 하여금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할 수 있는가? (1)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 하나님께서 성결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또한 지금도 기성, 예성 뿐 아니라 나사렛교회 등과 같은 성결파 교단의 목회자를 세우시고 고군분투 목회를 하게 하시는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단지 이 땅에 또 다른 성결교파 하나를 세우시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 땅에 목회자의 수가 부족해서 그저 우리들을 성결파 교회의 목회자로 불러 세우셨단 말인가?

이 땅에 차고 넘치는 수많은 주의 종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를 성결교회의 목회자로 세우신 진정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답은 성결교회와 목회자의 정체성을 정확히 밝힌 기독교대한 성결교회 헌법에 너무나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교단헌법 제8조(본 교회의 사명)

초대 창립자들이 성결교회를 창립하였음은 또 하나의 교파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받은바 신앙의 체험을 통하여 복음의 도리를 세상에 한층 더 높이 드러내려는 열의에 있었다. 곧 요한 웨슬레가 주장하던 [성결]의 도리를 그대로 전하려는 사명 하에서 본 교회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을 더욱 힘 있게 전하여, 모든 사람을 중생하게 하며, 성도들을 성결한 신앙생활로 인도하여 주의 재림의 날에 티나 주름 잡힘 없이 영화로운 교회로 서게 하려는 것이다.

                                                                                                                    

위에 명시된 바와 같이 기독교대한 성결교회의 사명은 ‘곧 요한 웨슬레가 주장하던 [성결]의 도리를 그대로 전하는 일’이라고 명시되어있지만 사실 [성결]의 도리는 요한 웨슬레가 주장하기 훨씬 이전에 우리 하나님께서 수없이 명령하신 내용이었고(레19:2),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그토록 애타게 간구하신 기도제목이셨으며(요17:17), 인류의 성결을 위해 저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그 고귀한 물과 피를 다 쏟아주신 우리 주님의 십자가 고난의 진정한 목적이다.(히13:12)


오늘도 분명 이 땅에 사는 모든 영혼들을 향하신 우리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 성결이다(살전4:3). 이 사실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라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거룩함, 성결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여러 성결교단(기성, 예성, 나성, 구세군 등)을 세우셨고, 이 고귀한 사역을 위해 수많은 성결교회의 목회자들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영혼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는 일은 성결파 교단의 목회자로서 그 어떤 다른 일 보다도 가장 중요한 목회사역의 핵심이 된다.


어부는 고기 잡는 일을 위해 존재하고, 농부는 농사짓는 일을 위해 존재한다면 우리 성결교회와 목회자들은 죄에 물들어 있는 영혼들을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주는 일을 위해 존재하기에 그 옛날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더불어 이 고귀한 성결목회 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수고하여야만 할 것이다.(골1:29)


그럼 이러한 성결목회의 사명을 부여받은 우리들이 보다 더 구체적으로 내게 맡겨주신 영혼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첫째, 우선 내 교회 신자들로 하여금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죄용서 받고,  거듭났다’는 중생의 확신을 갖게 해 주어야 한다.

처음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죄 용서받아 거듭나는 은혜는「중생의 은혜」이다. 중생의 은혜는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먼저 홍해를 건넌 것처럼 첫 번 째 은혜이다(First Blessing). 그런데 성결의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건너갔던 요단강처럼 두 번째 은혜이다(Second Blessing). 

그래서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성결의 은혜를 받기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죄로 물들어 있는 영혼들을 성결의 은혜 자리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을 중생의 자리로 인도해야만 한다.

둘째: 비록 믿음 하나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있는 원죄 의 쓴 뿌리(죄의 부패성)을 깨닫게 하고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은 어느 누구나 처음 믿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얼마 안 가서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더러운 죄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내적인 죄성에 대하여 비 성경적인 잘못된 사상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아니,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자기합리화적인 신앙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또 "아무리 애써도 이 문제는 죽을 때까지 어쩔 수가 없는 거야" 라고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관주의에 깊이 빠지는 현상이다. 이 비관주의에 빠지면 얼마동안은 양심적으로 괴로워 하다가 점점 무뎌져서 나중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런 저런 합리주의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나는 구원받은 자니 육체가 짓는 죄가 내 영혼이 천국가는데 무슨 지장이 있겠어"라는 일명 영지주의식 무서운 이단사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슐라이에르 마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어느 누구나 영지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바 있다)

일찍이 우리 예수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라고 말씀 하셨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라고 말씀 하셨다.       

이러한 말씀들은 모두가 내적인 죄성으로 인한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대하여 합리주의나 비관주의에 결코 빠지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애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받을 수가 있다는 교훈의 말씀이다. 

오늘도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마음속을 살펴보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내게 맡겨주신 영혼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려면 비록 자신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자신 속에 남아있는 내적인 죄성에 대하여 합리주의나, 비관주의에 빠지지 말고 더욱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도록 잘 인도해야 만 한다.

셋째: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헌신하는 마음을 준비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선 먼저 철저한 회개가 필요한 것처럼,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고자 하는 헌신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온전히 헌신한다고 해서 꼭 신학교를 간다든가 목회자가 돼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구약의 아브라함을 통해서 온전한 헌신이 무엇인가를 잘 배울 수가 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셨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삼아 죽이시려고 그런 명령을 내리셨겠는가? 그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아브라함의 헌신의 마음과 정신을 시험해 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헌신의 시험에 합격한 아브라함을 통하여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가를 다음과 같이 배울 수가 있다. 


① 온전한 헌신이란, 모든 인간적 사랑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② 온전한 헌신이란,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양도하는 것이다. 

③ 온전한 헌신이란, 하나님의 명령 앞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브라함의 헌신을 본받아 온전한 헌신의 주인공이 되려고 마음먹을 때 우리의 결단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 주로 그것들은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나 내 것을 포기함으로 생길지 모르는 장래에 대한 염려 등의 불신앙일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헌신을 통하여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하셨던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과감히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온전한 헌신을 결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 산 제물이 되셔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바치셨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찬송가 311장 2절에도 보면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라는 가사가 나온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해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비한다면 만분의 일도 못한 헌신일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일이 결코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헌신의 동기를 말씀을 통해 잘 가르침으로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온전한 헌신의 마음을 가지고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넷째 :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단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중생을 위한 고난 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악한 내적죄성까지 성결케 하시기 위한 고난이심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으로 잘 가르쳐야 한다.

  분명히 히브리서 13장 12절 말씀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깨달아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진정한 목적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들의 죄들을 용서(중생)만 하시기 위해서 그 모진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께서 저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믿음으로 죄 용서받고 거듭난 신자 속에 남아있는 더러운 죄의 성질, 원죄의 쓴 뿌리까지 온전히 거룩하고 성결케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을 믿되 단지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주님으로만 믿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믿되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용서받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더러운 죄성까지 온전히 거룩하고 성결케 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으로 보다 깊이 믿어야 그 믿음대로 성결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다. 

그 옛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고 또 요단강 역시 믿음으로 건넜다. 우리가 첫 번째 은혜인 중생의 은혜를 받는 최종적인 조건도 예수님 십자가 고난에 대한 믿음이요, 두 번째 성결의 은혜를 받는 최종적인 조건 역시 예수님 십자가 고난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오직 일 점 일획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예수님은 내 마음의 성결을 위한 주님”이신 것을 의심 없이 인정하고 믿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바로 그 믿음을 보시고 바로 그 자리에서 성결의 은혜를 값없이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결체험의 확신을 더욱 분명히 갖도록 하기 위해서 히브리서13장 12절 말씀이 바로 자신을 향한 말씀임을 정확히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13:12절 말씀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성결)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중에서 ‘백성'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넣도록 인도한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O O O)을 거룩(성결)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이처럼 목회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히13:12절 말씀을 찾게 하여 '백성'이란 말씀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서너 번 크게 고백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술로 고백하는 것은 믿음을 돈독하게 하는 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죄의 쓴 뿌리를 거룩하고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 하셨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고후6:2)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오직 성결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그 믿음대로 성결의 은혜를 부어 주신다. 

물론 이러한 믿음도 우리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지만, 목회자는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일점일획도 변함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복음의 진리를 바로 깨닫게 해 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마음으로 믿은 사실을 담대히 입술로 고백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결단의 기도를 잘 따라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바로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성결의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결단의 기도)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 십자가 주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믿습니다. / 내 죄를 용서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 내 마음 성결케 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 내 마음 성결케 하신 보혈의 능력을 믿습니다. / 천국 가는 날까지 이 믿음 지켜 주옵소서"

(여기까지만 따라 하게 하고, 이 다음부터는 인도자가 조금 빠르게 마무리 기도를 혼자 한다)

인간의 심령을 성결케 하시는 분은 오직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성결의 역사를 위해 인간의 심령 속에 오셔서 직접 활동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그러나 이러한 성결케 하시는 신비한 은혜의 역사는 인간의 성결을 위해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김없이 흘려주신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한 성결의 믿음 없이는 결코 실제화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성도들에게 십자가 보혈 속에 들어있는 성결의 능력을 강력하게 선포함으로 성도들이 확실한 성결의 믿음을 소유 할 수 있도록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더불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다음으로, 성결의 은혜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영적인 지혜들에 대하여 몇 가지 더 언급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아직까지 성결의 은혜를 실제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성결의 길로 인도하는 데에도 아주 유익하게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것은 바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요소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내용은 지금도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성결부흥운동을 위해 노심초사 애를 쓰고 있는 박명수 교수의 2008년 서울에 있는 상암 나사렛 교회에서 열린 성결세미나 강의 가운데 소개되어진 내용이다.


18세기 영국의 성결운동을 이끌었던 요한 웨슬레목사님, 19세기 미국성결운동가였던 마틴 †X 목사님, 그리고 동양선교회의 설립자인 카우만, 길보른, 나까다 쥬지, 그리고 초기 성결교회시대에 성결복음의 큰 용사들이었던 이명직, 정남수, 이성봉, 김응조 목사님들 모두가 다 한 결 같이 과연 “어떻게 하다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아무쪼록, 성결의 은혜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전파하였던 성결복음의 용사들의 체험을 통하여 아직까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성결의 은혜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게 되는가에 대한 영적인 지혜를 얻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첫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성결에 대한 설교를 들음으로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미국의 만국성결협회를 창립했던 †X은 테일러의 성결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 한걸음 더 깊은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카우만은 시미스터의 권고로 온전한 은혜를 체험하기를 갈망하였다. 이것은 성결체험이 얼마나 성결 멧세지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는 말씀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일에도 적용되는 중요한 말씀이다.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려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목회자의 성결에 관한 설교를 들어야 한다. 아니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저자가 집필한 성결에 관한 서적을 탐독해서라도 성서적인 성결의 멧세지를 자꾸 읽거나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성결에 대하여 좀 더 정확히 알게 되고, 더욱 간절하게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성결의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다. 그래서 간교하기 짝이 없는 사단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강단에서 성서적인 성결의 복음이 선포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하고 막고 있는 것이다. 흔히 성결에 대한 설교가 선포되는 것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이 모든 이론은 다 원수 마귀의 그럴듯한 꾀임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의 이론을 생각해 보면, 성결은 깊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은혜이지만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깊이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성결에 대하여 설교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이론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결에 대해 자꾸 이야기 하면 교회부흥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부정적인 이론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교회부흥이라는 것이 죄인을 불러 중생의 은혜자리로 인도하고, 중생한 신자를 성결한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영적인 부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이론은 간교한 사단 마귀의 꾀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생각해 볼 때 교회의 양적인 부흥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적인 부흥인데 질적인 부흥은 바로 성결의 복음을 통해서만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은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될 부정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죄와의 씨름 가운데 고민하다가 성결의 은혜를 체험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성결교회의 사부라고 할 수 있는 이명직 목사님은 마음속에 들어오는 이성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하여 깊은 고심과 갈등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전도를 나간다든가 또는 교회에 부흥강사로 나갈 때에 남, 여 두 사람의 강사가 함께 가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지방교회를 순회하며 부흥회를 인도하러 갈 때에는 거의 한 달간씩 걸려 부흥회를 인도하곤 하였다. 한 번은 이명직 목사님도 신학교 제자인 어느 여 전도사님과 동행하였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일명 스켄들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이명직 목사님은 카우만 선교사님에게까지 가서 이 일에 대하여 해명하고 보고를 드려야 했다. 이 자리에서 이명직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카우만 선교사님!, 저는 결단코 겉으로는 큰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죄를 졌습니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명직 목사님은 당시 아현성결교회 담임목사였었는데 신앙양심에 가책을느끼고 담임목사직을 스스로 사임하였고, 또한 아현성결교회 바로 옆에 있었던 서울신학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신학교 기숙사 사감직에서도 스스로 사임을 하였던 것이다.


이후, 이명직 목사님은 자신이 공직에서 물러난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왜 나는 음욕의 시험과 유혹을 마음으로라도 물리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인가?”라는 영적인 고민과 갈등 속에 몸부림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죄의 갈등과 고민이 결국은 훗날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죄가 죈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성결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다. 비록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상의 죄는 아닐지라도 주의 말씀에 위배되는 작은 내적 죄의 문제라 할지라도 애통하며 몸부림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영적인 축복이 결코 찾아올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성결에 관계된 성경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믿을 때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소개한 미국의 마틴 †X 목사님은 요일1:7의 말씀을 통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국에 나사렛교단을 세우는 일에 선구자 역할을 하신 정남수 목사님은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 즉 성결함이라”

또한 예수교 대한 성결교단 신학교인 안양의 성결대를 세우신 김응조 목사님은 요일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또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 역시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는 말씀을 통하여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넷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함과 동시에 강한 능력도 받았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아시아로 온 세계로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큰 용사들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 이 땅의 성결교회를 세우신 김상준, 정빈, 카우만, 길보른같은 분들과 나사렛교단을 세우신 정남수 목사님 같은 분들은 이미 천국으로 다 돌아 가셨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이 땅에 진정한 성결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서 제2의 카우만, 제2 제3의 이명직 목사님, 김응조 목사님, 정남수 목사님 같은 사람들을 찾으신다.

이러한 일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모든 성결교회 목회자들은 성결체험의 공통점을 목회에 잘 적용하여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만이 또 다시 성결부흥운동의 큰 역사가 이 땅에 또한 온 세계로 뻗어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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