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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과 구원
신성철 2015-03-23 추천 0 댓글 0 조회 217

▣ 주제 : 「성결과 구원」

 

 

▣ 강사 : 한 영 태 박사 (전,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 일시 : 1999년 6월 24일(목) 오전 11시 /

 

 

▣ 장소 : 서울신학대학교 본관 308호

 

1998년에 미국의 어느 신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 미국에서의 성결운동은 점점 죽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결운동 자체는 옛날만큼 왕성하지는 못하지만 성결의 복음만은 여전히 건재(健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 불같이 일어났던 성결운동은 19세기에 접어들자 교회의 세속화 현상과 방언 등, 은사중심의 오순절 운동으로 인하여 점점 약화되어 간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성결운동 역시 마찬가지 현상을 격고 있는 듯 합니다 만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에 성결복음을 통한 대 부흥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에게 주어진 강좌의 주제가「성결과 구원」인데, 한마디로 성결과 구원이란 용어는 ‘그 말이 그 말’ 입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레는 성결이란 말을 ‘완전한 사랑’ 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말로 많이 바꾸어 사용 하였습니다.  

그런데 웨슬레가 ‘성결은 사랑이다’라고 말 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성결을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다’라고 할 때에는 ‘완전’이란 단어가 풍기는 절대성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았고 심지어는 사람들로부터 “저 미친개를 강단에서 끌어내어 목을 메어 달아라”는 극단적인 모욕까지 당했습니다. 

사실 성결이라는 용어가 그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결이란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성서적인 구원 그 자체인 것입니다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자면 성결은 구원과 같은 뜻을 지닌 성서적 용어이지만, 신학적인 표현으로는 히브리서 7장 25절의 말씀처럼 ‘온전한 구원’ (Full Salvation)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7:25)

  ※ 온전히 - 영어로는 Completely, 완전히, 남김없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까지라는 뜻.

성서적인 성결을 다른 신학적인 표현으로 ‘온전한 성화’ (Entier Sanctification)라고도 하는데 성결을 ‘온전한 성화’ 또는 ‘온전한 구원’이라고 말 할 때에 앞에 있는 ‘온전한’ 이란 형용사를 생략하면 ‘성결 = 구원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결이 곧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온전한 구원의 의미와 성서적인 구원의 순서와 단계를 살펴보면서 ‘성결 =구원이다’ 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 그럼 왜, 성결이 곧 구원이 되는가? 

첫째, 성결은 원죄의 부패성을 온전히 구원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죄로부터의 구원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여 나서 자기 스스로 지은 모든 죄들, 즉 자범죄 뿐만 아니라 타고난 죄, 물려받은 죄, 유전된 죄, 즉 원죄까지 온전히 구원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자범죄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후에 자신이 말과 행동으로 지은 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원죄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서 생긴 결과와 상태를 가리키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의 단절, 하나님의 형상파괴, 도덕성의 상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원죄라는 것은 우리 몸 속 어디엔 가에 있는 일종의 덩어리가 아니라, 애기가 ‘응애’하고 태어날 때 이미 갖고 태어나는 ‘나의 나됨’ 즉 삐뚤어진 인격, 자기중심적인 기질과 본성(Nature)이 원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구원하실 때 자범죄는 중생(重生)의 은혜를 통해서, 원죄는 성결(聖潔)의 은혜를 통해서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중생 때는 모든 자범죄들을 용서받게 되는 것이며, 성결 때는 상태로서의 원죄가 온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서 모든 인간에게 유전되어 온 하나님과의 단절, 하나님의 형상 파괴, 도덕성의 상실 등은 중생과 성결의 은혜를 통해서 비로소 완전히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로부터의 구원의 과정을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옛사람(원죄) ⇢ 중생의 은혜 ⇢ 2. 새 본성+ 옛사람 ⇢ 성결의 은혜 ⇢ 3. 새 본성  

6. 25 전쟁 때에 우리나라는 부산만 남겨놓고 남한 땅 전체가 공산군의 손에 넘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멕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빼앗겼던 땅을 되찾게 되었고 서울도 수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리산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발악을 하는 일명 빨지산 잔당들 때문에 아주 골치를 썩은 일이 있습니다. 결국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잔당들을 완전히 없애고서야 안심하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중생의 은혜를 통하여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빨지산과 같은 원죄의 옛 본성이 거듭난 신자의 마음속에 잔존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결의 은혜를 통하여 원죄의 옛 본성이 완전히 제거됨으로 비로소 모든 '죄로부터의 온전한 구원' 이 이루어지게 되며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본성만을 소유하고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참으로 이상한 것은 중생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성결에 대하여는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중생의 은혜라는 것은 마치 강아지가 사람이 되는 것처럼, 사단 마귀의 자녀였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여 나는 참으로 놀라운 영적인 대 사건입니다. 그리고 성결은 어떤 면에서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는 것과도 같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유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강아지가 사람이 되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아니면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어쩌면 중생한 신자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어떻게 보면 중생보다 더 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생을 경험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중생보다 더 쉬울 수도 있는 성결의 경험을 제대로 사모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고전3:1~3)이라고 말하면서 어른의 신앙으로 성장해 나아갈 것을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 역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또 다시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 (벧전2:2)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여 난 신자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고 체험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중생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보다 승리로운 신앙생활을 영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신자가 성결의 은혜를 통하여 내적인 죄의 본성을 온전히 변화 받고 나아갈 때에 날마다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은 곧 모든 죄로부터의 구원이며 온전한 승리라고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구원의 정도 또는 단계적으로 볼 때에 성결은 곧 구원이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단계적으로 나열해 보면 완전히 부패한 인간의 양심을 일방적으로 회복해 주신 선행적인 은총으로부터 시작해서 회개, 칭의(중생, 양자), 성장, 제2의 회개, 성결(완전성화), 성장, 영화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중생의 단계는 마치 옛날 임금님을 만나러 서울에 온 사람이 첫 번째 관문인 남대문을 통과한 것과 같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대문을 통과했다고 임금님을 바로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두 번째 관문인 광화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경복궁에 들어가서 임금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남대문을 통과하고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두 번째 관문인 광화문을 향해서는 아예 가려고도 하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중생의 은혜를 통해서 자신이 지은 모든 자범죄들을 다 용서받은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두 번째 은혜가 되는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 만이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에 온전히 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중생의 은혜를 받았다고 “이젠 다 됐다”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들은 마치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은 잘 했지만 아예 졸업을 할 생각을 포기한 어리석은 학생과도 같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학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졸업이기 때문에 중생의 은혜를 경험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고 체험해야 만이 영원한 구원을 확실히 보장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정도나 단계적으로 볼 때에 중생의 은혜로부터 시작된 죄로부터의 구원의 역사가 성결의 은혜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서가 가리키고 있는 기독교의 구원이란 곧 성결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결은 곧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 결 론

영원한 내세 구원의 가장 확실한 보장은 성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통하여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가운데에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이것’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말씀이겠습니까?

언뜻 보면 그 말씀 앞에 나오는 화평함과 거룩함 둘 중에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 혹 둘 다를 가리키는지 잘 분간을 할 수가 없지만 헬라어 원어성경이나 영어성경을 보면 ‘이것이란’ 바로 '거룩함(성결)' 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음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결은 성서적인 구원 그 자체요, 영원한 내세구원의 확실한 보장을 가져다주는 은혜이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중생의 은혜를 통하여 죄사함을 경험한 다음에는 반드시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고 체험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내세구원의 가장 확실한 보장은 구원의 정점이라고 할 수가 있는 성결의 은혜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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