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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가 성결을 강조한 이유 신성철 201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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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웨슬리가 성서적 성결을 강조한 이유들

  아래 내용은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였던 홍성철 교수가 지은 [요한 웨슬레의 복음에 대한 이해] 책 가운데 ‘성결의 은총’ 부분에 나타난 요한 웨슬리가 왜 성서적 성결을 전파하고 강조하였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는 이 내용을 통하여 지금도 동일한 이유에서 성서적 성결복음의 전파와 교육, 설교 등의 절대적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존 웨슬리는 "성경적 성결을 이 땅에 전파하려고" 노력하였는가?


  첫째, 성결은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이었다.

  웨슬리는 히브리서 12장 14절의 말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를 주석하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모든 성결을 따르지 않으면 각종의 죄에 빠지는 지름길이 된다."

웨슬리는 이 교리가 성경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것은 성 바울의 교리, 성 야고보의 교리, 성 베드로와 성 요한의 교리입니다; 그리고 순수하고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들의 교리이지 웨슬리의 교리가 아닙니다. 나는 가장 알아듣기 쉬운 말로 내가 그것을 어디에서 그리고 언제 발견했는지를 당신에게 말하겠소.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구약과 신약에서 발견했소… "


  웨슬리가 성결을 강조한 둘째 이유는 신자들 안에 남아 있는 죄 때문이었다. 그는 신자들이 중생의 경험을 하는 순간 모든 죄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성령이 그들의 삶 속에 내주하신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이 여전히 죄를 범할 수 있는 죄성(罪性)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역시 알고 있었다. 그는 바울의 주장,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갈 5:17)를 인용하면서 신자들 안에 있는 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육체, 곧 악한 성품이 신자들 안에 있는 성령도 대적 합니다; 중생한 사람들 안에도 '서로 대적하는'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웨슬리는 이 두 가지 원리를 "신자들 안에 있는 죄"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확대해서 설명하였다:


  "진실로 이 중요한 사실, 신자들 안에 있는 두 상충적 원리들 - 자연과 은혜, 육체와 성령 - 이 바울 서신 전체에서, 아니, 성경 전체에서 나타 납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지시와 권면이 이 명제(命題) 위에서 발견 됩니다; 성경의 저자들조차 신자라고 시인한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못된 성질과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안에 있는 믿음의 능력으로 이것들과 싸우고 정복해야 된다는 권면을 계속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중생한 신자들이 그들을 시시때때로 엄습해 오는 유혹과 죄들을 정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회개이다. 물론 이 회개는 불신자가 거듭나기 위하여 거쳐야 되는 회개와는 다르다. 신자의 회개는 이미 내주하신 성령의 역사로 신자들 마음 안에 잔재(殘在)하는 죄들, 겉으로 들어난 죄들, 죄책감의 문제, 절대적 무기력증의 문제 등에 대한 자각(自覺)과 아픔이다.


  요한 웨슬리가 성결을 강조한 셋째 이유는 전도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전도사역과 성결의 경험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특히 성결의 경험이 강조되지 않으면 전도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약화(弱化)되었다. 그가 1765년에 브리스톨(Bristol)을 방문하면서 신자들의 수가 그 전 해보다 줄어든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그 후 이틀 동안 내가 브리스톨에 있는 모임을 살펴보니 놀라웁게도 작년 시월 내가 그 곳으로 떠난 때보다 오십 명이나 줄어든 것을 발견하였다. 한 가지 이유는 기독자 완전이 별로 강조되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전해지지 않는 곳에서는 설교자들이 아무리 말을 유창하게 하더라도 숫자나 청중의 은혜가 별로 증가되지 못할 것이다."


  알렉산더 보레인(Alexander Boraine)은 웨슬리의 진단에 동의하면서, 전도와 성결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성결의 목적은 전도이며, 전도의 목적은 성결이다! 그뿐이랴, 성결의 설교는 전도의 방편이나 복음의 설교는 모든 사람들이 거룩 되게 하기 위함이다."


  웨슬리가 성결을 강조한 넷째 이유는 신앙 성장을 위해서이다.

  사람이 중생의 은총을 경험하면 영적으로 갓 태어난,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가 된다. 그리고 그 어린 아이는 성숙한 신자로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가 영적으로 성장해 가면 갈수록 그의 부족과 한계에 대하여 더 예민하여진다.

  그가 중생의 은총을 경험할 때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건만 아직도 그를 사로 잡아오는 죄성을 인식하게 된다. 웨슬리는 신자 안에 있는 부족과 갈등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우리가 은혜 안에서 성장하면 할수록… 그 만큼 더 우리의 육신적 마음 안에 있는 적의(敵意)와, 의와 참된 성결로 온전히 새로워져야 될 필요성을 분변(分辨)하게 된다."


  이 성결의 필요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선행 은총과 중생의 은총에서 역사하신 성령은 이제 신자 안에서 역사를 이루어 성결의 은총을 허락하신다. 실제로 이 성결의 역사는 신자가 중생을 경험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 삶 속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듭날 때 성령이 그 신자 안에 내주하여 실제적인 변화를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령이 그 신자 안에서 계속적으로 역사하여 성결의 은총으로 연결시킨다.


  그러면 모든 거듭난 신자는 자동적으로 성결의 은총을 경험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는 성결의 필요를 주지(周知)하고 그 은총을 경험하기 위하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가 바로 회개와 믿음이다. 웨슬리는 신자의 회개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회개란 우리의 마음 안에 죄들이 잔재하면서 우리의 언행(言行)을 이배하고 있는 것을… 그리고 모든 성질과 언행에 대하여 심판을 받아야 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웨슬리는 "인내"(On Patience)에 대한 설교에서 성결도 중생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단순하고 진솔한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무엇을 믿을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하나님이 여러분을 모든 죄에서 구원하고 또 여러분을 거룩으로 충만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둘째,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을 속속들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셋째, 그가 여러분을 속속들이 구원 - 모든 죄에서 당신을 정결케 하고 또 여러분 모두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구원 - 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넷째, 그가 그 역사를 지금 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죽을 때가 아니라; 어떤 먼 훗날이 아니라; 내일이 아니라 오늘. 그러면 그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분의 말씀대로 그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게 할 것입니다"


    “오늘 날의 한국교회 상황도 18세기 영국교회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성서적 성결의 복음 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 신성철 목사(성결복음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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