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목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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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목회론(제5과)
신성철 2015-07-04 추천 0 댓글 0 조회 369

성결목회론(5과)
제목 : 왜, 성결교회 목회자들이 성결의 은혜를 꼭 받아야 만 하는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4년 전, 그러니까 1901년 2월 1일에 미국 센프란시스코 항구를 떠나 일본 요코하마로 떠나는 큰 배 한 척이 있었다. 그 배의 이름은 중국 상선 챠이나호였다. 부웅~부웅~ 긴 뱃고동 소리를 내며 약 1달간의 거친 태평양 횡단을 위해 힘차게 출항하는 챠이나 호에는 동양 천지에 성결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내의 피아노를 판 얼마의 선교비를 갖고 이제 막 아시아 선교의 첫발을 딛는 카우만 선교사 부부가 타고 있었다.


카우만 선교사는 긴 항해 길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매일 선상복도에 올라와 저 태평양 건너 일본 땅을 바라보며 동양선교의 비전을 다짐하곤 하였다. 어느 날 선상에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데 잠간 동안이지만 신비한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카우만의 곁을 지나가시면서 환하게 웃어주시는 환상이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카우만 선교사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고 그것이 내심 마음의 갈등이 되어 있었던 때였다. 그것은 “왜 우리가 하필이면 저 일본 땅에 선교를 하러 가야 만 하는가?”라는 일본선교사역의 당위성과 자기 자신의 선교사역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다.


원래 카우만은 아내 레티가 심장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기후 상 심장병에 좋은 인도선교를 마음먹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나카다 쥬지 목사를 통해 일본 선교를 요청 받게 되었고 그로인해 일본으로 선교를 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카우만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왜 하필 일본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생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마음의 갈등이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카우만 부부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선교요청을 한 나까다 쥬지 목사는 자신이 미국 유학 중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였고 이 성결복음의 중요성을 너무나 가슴깊이 깨달았기에 줄 곳 성결의 복음이 일본 땅과 아시아에 어서 속히 전파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카우만 선교사의 마음속에는 “이미 아시아에는 많은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었는데--”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환상 속에 자신을 바라보며 밝게 웃으시던 예수님으로부터 무언의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카우만 선교사야 너는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 이전에 많은 선교사들을 통해 저 아시아 땅에 중생의 복음 밖에 전해 지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어서 가서 모든 죄로부터 온전히 구원하는 성결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라는 일종의 영적인 암시였던 것이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이러한 신비로운 체험은 카우만의 마음속에 아시아 온 천지에 대한 성결복음전파의 열정과 비전을 더욱 굳세게 만들어 주는 아주 귀한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성결교회 안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는 이러한 카우만 선교사의 영적체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이 108년 전, 성결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사명을 밝히 알 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어려운 목회현장 속에서도 우리를 성결교단의 목회자로 부르시고 맡겨주신 성결복음에 대한 영적자부심과 성결목회열정을 더욱 뜨겁게 불 태워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자범죄를 해결하는 복음이 중생의 복음이라면, 거듭난 신자 속에 남아있는 원죄의 쓴 뿌리와 악한 죄의 부패성을 해결하는 복음은 오직 성결의 복음 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바로 목회자 자신이 먼저 성결의 은혜를 실제적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이러한 성결복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성결의 복음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을 통해 그 영적능력과 의미가 살아나고 그 복음의 영향력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결교회는 아예 교단 헌법에 목회자는 물론이요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일을 필수요인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결교회의 진정한 목회자나 평신도 지도자가 되려면 성결의 복음에 대해서 자주 듣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어떤 일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성결의 은혜‘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야만이 우리모두를 목회자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정확히 깨달을 수가 있게 된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왜 성결교회의 목회자들은 성결의 은혜를 개인적으로 꼭 체험해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성결교단의 목회자로서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성결신앙을 고백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말 속담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쉽게 설명해 주는 말이다. 또 교회 안에서 자주 쓰는 말로써 ‘은혜나 은사는 받은 자만이 안다’라는 말도 있다. 은혜도 그렇고 은사도 그렇다. 내가 먼저 체험을 해야만 어떤 핍박과 조롱 속에서도 결단코 흔들리지 않는 진실 된 신앙고백을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결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는 성결교단의 목회자로서 성결의 은혜에 관하여 지식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성결의 은혜를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일은 열배, 백배 더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가끔 개 교회의 부흥과 발전의 열매로서 교회의 중직을 맡을 일군들을 세우는 영광스런 임직식에 참석할 때가 있다. 임직식 때 빠지지 않는 순서가 임직대상자의 신앙을 문답을 통하여 솔직히 고백하는 순서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 때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는 임직대상자들을 앞에 세워놓고 “중생하고 성결한 체험을 하였느뇨?”라는 질문을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만일 질문을 하는 목회자 자신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눈감고 아웅 하는 식의 영적위선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목회자 자신도 체험하지 못한 성결의 은혜를 임직대상자들에게 질문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정말이지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로서 성도들 보기에도 그렇고 무엇보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도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결교단의 목회자로서 분명한 성결체험을 갖는 일은 개인적으로나 목회적으로도 너무나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 된다. 물론 성결교단의 목회자라면 이미 선지동산에서 성결에 관한 어느 정도 지식적인 공부는 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결에 대하여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으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일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성결체험만이 어떤 위협과 강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성결신앙을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해야만 사단 마귀가 시시때때로 가져다주는 달콤한 시험 과 유혹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목회자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한 사람의 성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과 모든 인간의 관계는 그 무엇보다도 죄의 담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관계가 얼마나 신실하고 돈독한 것인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성결교단의 목회자로서 자기 자신이 먼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고 날마다 순간마다 죄를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 옛날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이마의 정금패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쓴 관을 쓰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모습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목회자가 강단에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교훈을 설교하면서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미움의 죄 가운데 살아간다면 이것은 성결교단의 목회자로서 이름에 걸맞지 않는 위선적인 모습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서 우리 자신이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음욕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속에 여전히 음욕의 죄를 품고 살아간다면 이도 역시 동일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분명히 인간의 자범죄의 용서는 오직 믿음으로 중생의 은혜를 체험하는데서 이루어지는 영적인 결과이지만 매 순간 죄를 물리치고 이기는 능력은 오직 성결의 은혜를 체험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일이다.

제 아무리 미움이 죄고 음욕이 죄고 교만이 죄인 줄 잘 알고 있어도 성결의 은혜를 체험해야만 날마다 순간마다 그러한 모든 죄를 이기는 실제적인 능력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성결교단의 목회자로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일은 상대적 필요가 아니라 절대적 필요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가끔 교계의 이름 있는 목회자가 사단 마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마는 안타까운 모습을 바라볼 때가 있다. 일찍이 고 이성봉 목사님께서 말년에 후배 목회자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이다.

어느 목사님이 이성봉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다.

“이성봉 목사님, 목회자들이 정말 조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요?”

“음~ 목회자는 돈, 명예, 여자 이 세 가지를 항상 조심해야 하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여자를 가장 조심해야 해”

“그럼 목사님, 이성문제는 언제까지 조심해야 하나요?”

“이 사람아! 언제까지는--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조심해야지”

 

이 이야기는 우리 목회자들 사이에 너무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도 이런 문제로 인해 그처럼 어렵게, 그야말로 일평생 쌓아올린 목회의 경력에 먹칠을 하고 중도하차하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가끔씩 터지는 것을 보게 된다.


달콤한 죄의 시험과 유혹을 통하여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간교한 원수 마귀, 영적으로 나태 해진 다윗의 눈을 뚫고 들어온 간음의 유혹을 통해 성군 다윗을 무너뜨린 사단 마귀, 아니 우리 예수님 앞에까지 나타나 교묘한 방법으로 시험과 유혹의 손길을 뻗혔던 사단 마귀는 지금도 분명히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

더욱이 이제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마지막 발악을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의 대표격인 목회자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일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지만 특별히 목회자를 노리는 것은 목회자 한 사람을 쓰러뜨리면 교회 하나를 무너뜨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6, 25전쟁 때 북한군들은 국군의 소대장들에게 집중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왜 그들은 국군 소대장들에게 집중사격을 가했겠는가? 이유는 오직 하나일 것이다. 소대장이 죽으면 그 소대전체가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오늘 날 사단 마귀가 목회자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이유 역시 동일하다.

그러므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도 항상 간교한 사단 마귀의 달콤한 죄의 유혹을 물리칠 영적인 힘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성결의 은혜를 분명히 체험하고 날마다 순간마다 성결의 은혜를 잘 유지하며 살아 갈 때 그 어떤 시험과 유혹도 넉넉히 물리칠 수 있는 영적능력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에 성결교단의 목회자라면 반드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해야 만 할 것이다.

 

 셋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해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성결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다!

이 말은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기도 하다.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지도 못한 목회자가 어떻게 성결의 복음을 강단에서 전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것은 마치 결혼하지도 않은 사람이 부부의 삶을 논하는 것과도 같고, 그 음식을 맛보지도 않은 사람이 그 음식에 대하여 요리강습을 해보겠다는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성결교회의 초기시대에 성결복음의 큰 부흥을 일으켰던 주일 오후 2시 성별회 강사는 반드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목회자라야 한다는 원칙이 존재했던 것이다.


부부로서 살아본 자라야, 그 음식을 먹어본 자라야 부부의 삶에 대하여, 음식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결의 복음 역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목회자라야 자신 있게 성결의 복음에 대하여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결교단의 목회자라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반드시 성결의 은혜를 실제적으로 체험해야 만 한다.

 

오늘 날 성결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염려하는 소리가 드높아 지고 있다. 왜 이런 안타까운 결과가 생기게 된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서울신학대학교의 박명수 교수는 “성결이라는 이름하에 교회도 많고, 목회자도 많고, 신자들도 많고, 신학교 강의나 세미나도 많지만 실제적으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적어서 그렇다”고 분명하게 지적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진정으로 맞는 말이다. 성결의 은혜를 확실히 체험하면 그 누가 뭐라고 해도성결의 복음에 대한 반석 같은 확신을 소유하게 된다. 이러한 반석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성결의 복음에 대하여 능력 있게 설교할 수 있고 그러한 설교가 울려 퍼질 때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실 뿐만 아니라 그 때 비로소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성결교단의 목회자가 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해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몇 가지로 그 이유와 타당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첫째, 성결교단의 목회자로서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성결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둘째, 사단 마귀가 시시때때로 가져다주는 달콤한 시험과 유혹을 넉넉히 이길 수 있기 위해,
셋째, 다른 사람에게 성결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기 위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해야만 한다.

 

만에 하나 혹, 이 글을 읽는 성결교단의 목회자로서 아직까지 실제적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를 동이고,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 이 땅에 성결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어 나가는 신실한 성결교단의 목회자가 되기 위해 오늘부터라도 애타게 부르짖고 간구하여 반드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자랑스런 성결교단의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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