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목회론(6과-타교단 목회자용) | 신성철 | 2015-07-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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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목회론(6과) 첫째, 우선 내 교회 신자들로 하여금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죄용서 받고, 거듭났다’는 중생의 확신을 갖게 해 주어야 한다. 처음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죄 용서받아 거듭나는 은혜는「중생의 은혜」이다. 중생의 은혜는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먼저 홍해를 건넌 것처럼 첫 번 째 은혜이다(First Blessing). 그런데 성결의 은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건너갔던 요단강처럼 두 번째 은혜이다(Second Blessing). 둘째: 비록 믿음 하나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있는 원죄 의 쓴 뿌리(죄의 부패성)을 깨닫게 하고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은 어느 누구나 처음 믿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얼마 안 가서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더러운 죄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내적인 죄성에 대하여 비 성경적인 잘못된 사상에 물들어 있다. (독일의 신학자 슐라이에르 마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어느 누구나 영지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바 있다) 일찍이 우리 예수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라고 말씀 하셨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라고 말씀 하셨다. 오늘도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마음속을 살펴보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내게 맡겨주신 영혼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려면 비록 자신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자신 속에 남아있는 내적인 죄성에 대하여 합리주의나, 비관주의에 빠지지 말고 더욱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도록 잘 인도해야 만 한다. 셋째: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헌신하는 마음을 준비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선 먼저 철저한 회개가 필요한 것처럼,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 준비하는 자세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고자 하는 헌신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온전히 헌신한다고 해서 꼭 신학교를 간다든가 목회자가 돼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구약의 아브라함을 통해서 온전한 헌신이 무엇인가를 잘 배울 수가 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셨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삼아 죽이시려고 그런 명령을 내리셨겠는가? 그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② 온전한 헌신이란,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양도하는 것이다. ③ 온전한 헌신이란, 하나님의 명령 앞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브라함의 헌신을 본받아 온전한 헌신의 주인공이 되려고 마음먹을 때 우리의 결단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 주로 그것들은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나 내 것을 포기함으로 생길지 모르는 장래에 대한 염려 등의 불신앙일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헌신을 통하여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하셨던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과감히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온전한 헌신을 결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 산 제물이 되셔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바치셨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찬송가 311장 2절에도 보면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라는 가사가 나온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해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비한다면 만분의 일도 못한 헌신일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일이 결코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넷째 :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단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중생을 위한 고난 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악한 내적죄성까지 성결케 하시기 위한 고난이심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으로 잘 가르쳐야 한다. 분명히 히브리서 13장 12절 말씀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깨달아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진정한 목적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들의 죄들을 용서(중생)만 하시기 위해서 그 모진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께서 저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믿음으로 죄 용서받고 거듭난 신자 속에 남아있는 더러운 죄의 성질, 원죄의 쓴 뿌리까지 온전히 거룩하고 성결케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을 믿되 단지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주님으로만 믿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믿되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용서받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더러운 죄성까지 온전히 거룩하고 성결케 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으로 보다 깊이 믿어야 그 믿음대로 성결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다. 그 옛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고 또 요단강 역시 믿음으로 건넜다. 우리가 첫 번째 은혜인 중생의 은혜를 받는 최종적인 조건도 예수님 십자가 고난에 대한 믿음이요, 두 번째 성결의 은혜를 받는 최종적인 조건 역시 예수님 십자가 고난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성결체험의 확신을 더욱 분명히 갖도록 하기 위해서 히브리서13장 12절 말씀이 바로 자신을 향한 말씀임을 정확히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13:12절 말씀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성결)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중에서 ‘백성'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넣도록 인도한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O O O)을 거룩(성결)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이처럼 목회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히13:12절 말씀을 찾게 하여 '백성'이란 말씀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서너 번 크게 고백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술로 고백하는 것은 믿음을 돈독하게 하는 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죄의 쓴 뿌리를 거룩하고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 하셨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고후6:2)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오직 성결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그 믿음대로 성결의 은혜를 부어 주신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결단의 기도) (여기까지만 따라 하게 하고, 이 다음부터는 인도자가 조금 빠르게 마무리 기도를 혼자 한다) 인간의 심령을 성결케 하시는 분은 오직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성결의 역사를 위해 인간의 심령 속에 오셔서 직접 활동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그러나 이러한 성결케 하시는 신비한 은혜의 역사는 인간의 성결을 위해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김없이 흘려주신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한 성결의 믿음 없이는 결코 실제화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성도들에게 십자가 보혈 속에 들어있는 성결의 능력을 강력하게 선포함으로 성도들이 확실한 성결의 믿음을 소유 할 수 있도록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더불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첫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성결에 대한 설교를 들음으로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미국의 만국성결협회를 창립했던 X은 테일러의 성결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 한걸음 더 깊은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카우만은 시미스터의 권고로 온전한 은혜를 체험하기를 갈망하였다. 이것은 성결체험이 얼마나 성결 멧세지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는 말씀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일에도 적용되는 중요한 말씀이다.
둘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죄와의 씨름 가운데 고민하다가 성결의 은혜를 체험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성결교회의 사부라고 할 수 있는 이명직 목사님은 마음속에 들어오는 이성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하여 깊은 고심과 갈등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전도를 나간다든가 또는 교회에 부흥강사로 나갈 때에 남, 여 두 사람의 강사가 함께 가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지방교회를 순회하며 부흥회를 인도하러 갈 때에는 거의 한 달간씩 걸려 부흥회를 인도하곤 하였다. 한 번은 이명직 목사님도 신학교 제자인 어느 여 전도사님과 동행하였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일명 스켄들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셋째, 성결에 관계된 성경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믿을 때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소개한 미국의 마틴 X 목사님은 요일1:7의 말씀을 통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국에 나사렛교단을 세우는 일에 선구자 역할을 하신 정남수 목사님은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 즉 성결함이라” 또한 예수교 대한 성결교단 신학교인 안양의 성결대를 세우신 김응조 목사님은 요일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넷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함과 동시에 강한 능력도 받았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아시아로 온 세계로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큰 용사들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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