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부패성이란 무엇인가? | 신성철 | 2011-11-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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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왓슨 (George D. Watson) : 세계적인 미국의 성결부흥사로서 그의 나이 25살이 되던 1870년에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후 192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를 다니며 성결의 복음을 외쳤다. 이 설교는 '유전죄'라는 그의 설교 가운데서의 한 내용이며, 본문은 성결에 관한 야고보서 말씀을 첨가하였고 어려운 부분과 결론부분은 설교하기 쉬운 내용으로 교정하여 편집하였다. 설교제목 : 죄의 부패성이란 무엇인가? 본 문 : “약 4 : 8”
오늘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병들게 하는 결정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죄의 부패성’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죄의 부패성’이란 말은 '불의'라는 말처럼 우리 인간 영혼의 도덕적 본성 속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들 자신은 고칠 수 없는 우리의 존재 속에 있는 도덕적인 무능’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치료약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질병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죄의 부패성의 본질’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죄의 부패성은 실제적인 죄가 아니라 그 실제적 죄가 발생하도록 하며, 그것을 촉진시키는 내적인 원천입니다. 죄의 부패성은 세상에 태어난 어린 아이가 도덕법의 경계를 알기도 전에 그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실제적인 죄를 짓도록 몰아가는 것이 바로 죄의 원천 즉, 죄의 부패성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토양 깊숙이 감추어진 아주 해로운 씨앗과도 같습니다, 그 씨앗은 자기를 성장시켜서 나중에 공개적인 범죄의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 은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의 은혜를 통한 용서가 자범죄들에 대한 완전한 용서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선천적인 죄의 부패성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용서가 우리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감과 관련되지만, 우리는 선천적 죄의 부패성에 대해선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은 서로 영역과 범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의 부패성도 용서의 영역보다 훨씬 더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생한 신자의 마음속에도 그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신자는 자신 속에 남아있는 선천적 죄의 부패성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죄 용서받고 거듭난 기쁨 때문에 자기 속에 아직 죄의 부패성이 존재한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죄성이 그의 안에서 요동하기 시작할 때, 그는 깜짝 놀라서 “아니 도대체 내 속에 뭐가 남아 있는 거지?”하며 경계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의 이중적 본성과 성결을 알지 못한 채, 자주 자신의 회심이 잘못 되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4. 죄의 부패성은 인간 스스로는 발견할 수 없고, 오직 회심한 마음 속에서 환히 비추시는 성령의 빛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죄의 외적인 행위는 죄인 스스로도 눈으로 볼 수 있고, 평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혼의 밑바닥에 있는 육적인 생각의 그 어둡고도 선천적인 불결함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깨어 간절히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비록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지만 아직 마음속에 남아있는 죄성의 쓴 뿌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화폐는 아주 특수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낡고 부드러운 스페인의 지폐를 용광로에 넣으면, 뜨거운 열기 속에서 그 본래의 글자들이 스스로 들어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죄의 부패성은 본래의 윤곽이 분명히 드러나기 전에, 그 마음이 성령에 의해서 달구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독립된 죄의 부패성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모든 통로를 통해서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선천적인 죄 그 자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죄의 개체이며, 성경에서는 단수의 형태로 '죄' '불의' '부패' '악' 등으로 말해지고 있습니다. 암환자가 그 암의 뿌리가 제거돼야 만 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죄의 부패성이란 이 존재는 그 뿌리가 제거되지 않는 한 신자의 마음속에 모든 악의 쓴 뿌리로서 당당히 남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6. 죄의 부패성은 외적인 삶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나 신자의 고통스런 의식 속에서는 나타납니다. 거듭난 신자의 삶이 겉보기에는 흠이 없다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감지된 이러한 불결함에 대해서 통곡할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죄의 부패성에 의한 타인의 속병을 볼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과 하나님은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7.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 안에서 죄의 부패성의 동요를 감지하기 시작할 때, 그는 그것의 속죄를 간구해야 하며, 성결을 향해 나아가야만 합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그는 결국 자신의 의로움을 상실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 동안 타락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서 이 죄의 부패성을 무시하고 등한시 한 중요한 교훈인 것입니다. 8. 죄의 부패성에 대한 유일한 치료는 마음의 정결, 곧 성결의 은혜를 통한 것입니다. 죄의 부패성은 인간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서 절대로 없앨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인간이 노력을 한다고 해도 어느새 죄의 부패성은 싹을 틔우고, 쓴 열매를 영원히 맺을 것입니다. 그 더러운 샘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억제한다고 해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신자 속에 남아있는 죄의 부패성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께서는 약4장 8절 말씀에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두 마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은 의로운 마음과 죄의 부패성에 의한 악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죄의 부패성은 오직 성결의 은혜를 통해서만이 제거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는 우선 죄 사함 받는 중생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이미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결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아직까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당장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이 전에 예수님을 믿고 이미 거듭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고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병들게 하는 이 악 한 죄의 부패성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고 정결한 삶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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