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목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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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목회론(1과) 신성철 201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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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목회론 제1과  
제목 : '성결 노이로제’ 탈출 작전

  벌써 20여년이 지난 일이다. 춘천에 있는 어느 성결교회에서 권사취임식이 있어서 축하차 갔었다. 본당 예배실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축하객으로 가득 찼고 곱게 한복들을 차려입은 권사후보들이 한 줄로 앞에 나와 서 있었다.

이어서 그 교회 담임목사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신구약 66권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순전한 말씀인 줄 믿느뇨?”

“아~멘!” 다 같이 힘 있게 대답들을 하였다.

그 다음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중생하고 성결한 은혜의 체험을 하였느뇨?”

“---”

잠시동안 적막이 흘러갔다. 한 사람도 대답을 못하고 조용히 서 있었는데, 당황한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내 뱉은 말은 “어, 지금 대답 못하시면 권사가 될 수 없습니다”였다.

잠깐 동안이지만 실내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이 되 버렸다.

바로 그 때, 강단 뒤 의자에 앉아 있었던 어느 목사님이

“은혜는 나중에 받기로 하고 그냥 진행 합시다~”라고 한 마디를 하였다.

그럭저럭 질문 순서가 다 끝나고 공포, 권면, 축사 순서 등으로 취임식은 끝이 났다.

그런데 왠지 자격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직분을 떠맡긴 것 같은 씁쓸한 맛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왜 잘 나가다가 성결의 은혜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당황을 하는 것인가?”라는 답답한 마음과 의문이 나의 마음속에서 떠나가지 않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평신도들은 ‘중생의 은혜’하면 그런대로 대답하기 쉬운 것으로 알고 말하기도 하는데, 일단 ‘성결 은혜’하면 아주 어려운 것으로 알고 말하기도 힘든 것으로 안다. '성결'이 정말 그렇게 말하기도, 다루기도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

한 마디로 뭐든지 잘 모르면 어렵게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세히 알고 보면 너무나 쉬운 일들이 우리 주변엔 많다. 가령 나는 세탁기를 사용 할 줄 모르고 반면에 내 아내는 완전 컴맹이다. 그런데 나는 눈 감고도 컴퓨터를 다룰 줄 알고 워드작업도 할 줄 안다. 또 내 아내는 눈 감고도 세탁기를 작동하고 다룰 줄을 안다. 한 마디로 잘 알면 쉬운 법이고 잘 모르면 어려운 법이다.

성결’에 관계된 내용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성경이 가르치는 ‘성결’에 대하여 정확히 알기만 하면 ‘성결의 은혜’에 대하여 너무나 자신 있게 말하고 다룰 줄 알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 '성결'이란 정확히 어떤 뜻인가?


'성결'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거룩함’ 또는 ‘깨끗함’이다. ‘거룩함’이라고 하면 다분히 종교성이 짙은 용어이지만 ‘깨끗함’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말끼를 알아듣는 두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그러니까 ‘성결’이란 말처럼 일반적이고 알기 쉬운 단어도 없다는 뜻이다.

다만 성서가 말하는 '성결'이란, 특별히 구약적 개념에서의 성결(카도쉬)이 세상과 구별된 성별의 뜻이 있는 반면에 신약적 개념에서의 성결(하기오스)이란 ‘마음의 정결’을 말하는 것이기에 유치부 어린이들이라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차원에서 쉽게 설명한다면 성결이란 한마디로 ‘깨끗한 마음’이다.

‘성결이란, 깨끗한 마음이다!’ 이 얼마나 쉬운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성결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나면 성결과 관계된 그 어떤 교리적이나 신학적 내용도 이해하기가 아주 쉬워진다.

예를 들어 아까 그 권사취임식에서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성결의 은혜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성결의 은혜’란 구지 신학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성결의 정의를 정확히만 알고 있다면 ‘성결의 은혜’란 ‘마음을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또는 역사하심’이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결’이 쉽고도 간단한 뜻을 가졌는데도 왜 ‘성결에 대한 인식’이나 ‘성결의 은혜’에 대하여 생각할 때 흔히 ‘성결 노이로제’에 걸려서 말도 잘 못하고 대답도 잘 못하게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성결의 의미를 ‘마음의 정결’ 즉, ‘깨끗한 마음’으로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성결하면 무슨 ‘전지전능’ ‘절대적 완전’ ‘행위의 완전’ 등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결’하면 일단 자신감이 없고 그래서 말하기도 부담되고 곤란 하니까 결국 성결에 대하여 설교하기에도 자신감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아예 ‘성결 노이로제’ 내지는 ‘성결 기피증’에 깊이 빠지게 돼 버리고 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목회자 자신이 ‘성결’에 대하여 정확하게 선포하고 자신 있게 가르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성도들이 ‘성결’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가 있으며 누가 물어볼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있겠는가? 결국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성결에 대한 문제만 나오면 목회자나 평신도나 다 같이 오리무중에 빠져버리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첫 단추를 잘못 끼면 안 된다’라고들 말한다. ‘성결’에 대한 첫 단추 격이 되는 ‘성결’의 정확한 의미와 뜻을 모르게 되면 그 다음엔 점점 더 성서적 성결의 자리에서 멀어지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성결’을 ‘절대적 완전’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성결의 은혜를 받게 되면 기본적인 욕구도 감정도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착각내지는 오해하는 경우가 참 많이 있다.

이러한 잘못된 사상에 빠져서 결국은 성경이 가리키는 ‘성결의 은혜’를 전파하는데 결정적 걸림돌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아이로니컬하게도 주후 354년부터 430년까지 살았던 그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다.

우리 개신교 신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마틴 루터를 비롯하여 27살 젊은 나이에 기독교 강요를 집필한 천재 신학자 죤 칼빈에 이르기까지 성 어거스틴에 의한 신학적 영향을 안 받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성 어거스틴이 오해한 가장 큰 신학적 오류가 바로 '성적인 욕구 자체를 죄' 생각하였기 때문에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한 결 같이 ‘예수 믿는 죄인 사상’ 사로잡힐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분명히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은 죄’이지만 ‘자기 아내를 보고 성욕을 느끼는 것’은 절대로 죄가 아니다. 만일 자기 아내에 대한 성욕 자체를 죄라고 규정짓는다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결국 “너희는 죄를 짓는 일을 통해 번성하라”는 어이없는 명령을 하신 격이 되 버리고 만다.

‘성결의 은혜’ 절대로 인간이 태여 날 때부터 갖고 나온 기본적인 욕구(식욕, 성욕, 휴식욕 등)까지 없애주는 그런 은혜가 결코 아니다. 도리어 ‘성결의 은혜’ 하나님이 허락하신 법과 질서 속에서 기본적인 욕구를 은혜롭게 잘 채워나가는 좋은 방편이 되는 것이다.

또 ‘성결’을 절대적 완전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성결의 은혜’ 받게 되면 ‘시험과 유혹조차 안 받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착각내지는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서 시험과 유혹조차 안 받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까지는 그 누구도 시험과 유혹을 받는 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히브리서에 보면 우리 예수님조차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우리가 당할 시험과 유혹을 다 당하셨다”(히4:15)는 사실을 참고해 보면 아무리 ‘성결의 은혜’ 받았다 해도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만큼은 시험과 유혹조차 안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에 있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죄라는 것은 시험과 유혹을 만나는 그 자체가 아니요, 시험과 유혹에 그만 무릎을 꿇고 자기 마음과 의지가 굴복 당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차이를 정확히 알고 사단의 꿰임과 간교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간교한 사단 마귀는 어떤 사람이 성결의 은혜를 통하여 모든 죄의 쓴 뿌리로부터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이젠 작전을 바꾸어서 아예 시험과 유혹을 만나는 그 자체를 죄라고 고발하면서 우리의 영적분별력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성결’을 무슨 ‘절대적 완전’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성결의 은혜’ 받으면 실수나 과오도 없고 환란이나 질고도 당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가 쉽다. 결코 ‘성결의 은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있는 연약성까지 없애주는 그런 은혜가 아니다.


오래 전 경기도 부천에서 개척교회를 할 때 주일학교 어린이 가운데 성결의 은혜를 받은 어린이가 있었다. 그 때 당시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여자 어린이였는데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모든 일에 일등만 하던 아이였지만 은근히 자기마음 속에 교만의 성질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주일학교 부흥회를 통하여 성결의 복음을 듣게 되었고 그런 다음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여 드디어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교만한 성질이 깨끗하게 씻겨진 그 어린이는 하루하루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며 승리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주일 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 어린이는 중학교 다니던 언니와 함께 길을 걷다가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아니, 애! 너는 성결의 은혜를 받았다는 애가 길에 가다 넘어지기도 하니?”

“??---”

비록 동생은 아무 말 못하고 말았지만, 그 언니야 말로 ‘성결’에 대하여 아주 잘못된 생각과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성결’은 결코 실수나 과오도 없는 그런 ‘절대적 완전’이 아니다. 이 잘못된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절대로 성서가 가르치는 ‘성결의 은혜’ 사모할 수도 없고 결국 ‘예수 믿는 죄인 사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며 잘못된 ‘성결 노이로제’ 증세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성결'은 어디까지나 ‘깨끗한 마음’이다!. ‘깨끗한 마음’이기에 성령님이 주시는 아가페 사랑의 능력,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또 ‘깨끗한 마음’이기에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며 사단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깨끗한 마음’이기에 영혼을 사랑하는 구령이 열정이 가득하며, ‘깨끗한 마음’이기에 하나님과의 영적교제와 그로인해 얻는 하늘의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목회와 선교 그리고 신학교 사역을 통해 성결의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죄의 부패성과 쓴 뿌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일이었다. 물론 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은사도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일은 바로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 주시는 일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사도행전 15장 8절과 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역사와 동일한 일임을 잘 알 수가 있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 하시고 믿음으로 저희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할렐루야!


끝으로 아주 오래 전, 개척교회를 할 당시 우리 교회를 다녔던 어느 여자집사님 이야기를 하고 마치려고 한다. 그 집사님은 친정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이셨고 어떻게 하다가 남자 선생님과 마음이 맞아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여자 집사님의 결혼생활은 평탄하질 못했다. 아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은근히 핍박할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는 한량기질까지 있어서 그런지 툭하면 외도를 하여 아내의 마음을 새까맣게 만들어 버리곤 하였다.

힘든 결혼생활이 15년 정도 흘렀을 때 이 여자 집사님의 마음은 미움과 원망, 저주와 비관의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너무나 남편이 미워질 때는 부엌에서 도마 위에다 큰 무 한 개를 올려놓고 칼로 내리치기도 하였다. 비록 예수님을 믿는 신자이었지만 이렇게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


처음 우리 교회에 출석 한 이후에 성결의 복음을 듣게 되었고 성결의 은혜를 받으면 마음속이 깨끗해진다는 아주 간단한 멧세지를 듣게 되었다. “성결의 은혜를 받으면 마음속이 깨끗해진다”는 말씀을 들은 이 집사님은 성결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오직 한 가지 “성결의 은혜를 받으면 마음속에 있는 미움, 저주, 원망 등의 악한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씀 하나만 붙들고 성결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고 드디어 어느 날 성결의 은혜 체험함으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성결의 은혜 통하여 남편에 대한 미움을 사랑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 나가게 되자 결국 남편도 나중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이 여자 집사님은 우리 성결교단에서 첫 번째 여자 장로님이 되는 축복과 승리를 얻게 되었다.


'성결의 은혜'는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결코 '절대적 완전사상'에 사로잡힘으로 더 이상 ‘성결 노이로제’에 빠져 있지 말고 성경이 가르치는 성결의 신앙과 지식 가운데 살아가는 거룩한 성결인들이 되어보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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