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목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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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목회론 (3과) 신성철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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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목회론(3과)
제목 : 성결의 은혜, 언제, 어떻게 받는 은혜인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서울신학대학교는 한 마디로 성결의 요람이다. 다시 말하면 신학생들로 하여금 성결의 복음을 제대로 알게 하고 그리고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해서 앞으로 성결교회의 목회자들과 선교사 등으로 키워나가는 일을 위해 존재하는 신학교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도 이 일, 즉 성결의 요람으로서의 사명완수를 달성하기 위해서 남다르게 애쓰고 수고하고 있는 교수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결은 이론적으로 배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인 체험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날 이 땅에 성결의 복음을 활발하게 전파되지 못하는 가장 심각한 원인은 “성결교회 간판, 목회자, 신학, 세미나 등은 많이 있지만 실제적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결복음의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성결교회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목회자든 평신도이든 성결의 은혜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만 하는가? 우선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는 일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분명한 지식을 먼저 습득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일대 일로 간구하고 사모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성결의 은혜를 직접 받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거듭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죄용서 받는 일은 순간적으로 되는 일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듭난 그리스도인 마음속에 남아있는 죄의 부패성이 깨끗하게 되는 일 만큼은 죽을 때까지 점차적으로 되는 일이라고 생각들 한다.


이러한 생각을 신학적인 용어로 “점진적 성화설”이라고 하는데 불행하게도 이 “점진적 성화설” 때문에 오늘 날 수많은 신자들이 순간적으로 거듭날 때처럼 동일한 원리에 의해 순간적으로 마음을 깨끗케 해주시는 성결의 은혜를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음이 성결해야 합니다”하면, “에-이, 마음이 성결해야 한다구요? 그건 죽을 때나 가야 성결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지금 당장 성결할 수 있단 말이예요?”라고들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어도 화내고 혈기부리는 그런 성질은 최소한 환갑은 넘고 칠순이 되어야 조금 없어지는 거지요”라고들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생각은 상식적이고 맞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간교한 사단 마귀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는 속이는 영이기 때문에 이런 사상들을 이용해서 지금도 성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을 사람들에게 넣어주고 있다.


그러므로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고자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은 “성결의 은혜체험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 우선 먼저 성서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만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성결의 은혜를 더욱 분명하게 개인적으로 체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 성결의 은혜가 믿는 자에게 순간적으로 임하게 된다는 성서적인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주후 49년에 초대교회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회의가 열리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진 사실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 때, 예루살렘 회의가 열린 이유는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열정적 전도를 통해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고 성결의 은혜를 받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와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 회의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예루살렘 회의가 열렸는데, 예수님 믿기 전에 바리새파 사람들이었던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자 사도들과 장로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고 어떻게 결론지어야 할지 몰라서 그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초대교회의 대표지도자격인 베드로가 일어나서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장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사실이 사도행전 15장에 자세히 소개 되고 있다. 사도행전 15장 말씀 중에 특별히 9절에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깨끗이 하다’는 말씀은 헬라어로 καθαρ?σα? (카타리 사스)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헬라어 원어로 ‘조금 씩 조금 씩, 점차적으로 깨끗이 하다’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카타리 사스’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단번에, 순간적으로 깨끗이 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결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성결의 은혜는 점진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라는 성경적 신앙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성결의 은혜야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서 순간적으로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다!’ 라는 굳센 믿음을 갖는 것이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올바른 신앙태도인 것이다.

 

사실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거듭난 신자 속에 남아있는 내적죄성의 문제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4가지 이론이 지금까지 교회 안에 내려오고 있다.

 

1) 중생 동시설

이 이론은 18C 독일의 진젠돌프에 의해 주장되었던 이론으로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지은 죄들도 다 용서되고, 더불어 남아있는 내적죄성도 동시에 다 없어진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성경을 봐도 맞지 않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의 경험적으로도 맞지 않다. 어떤 면에서 이런 생각은 ‘내 의지로 지은 자범죄들’과 ‘본래부터 있는 내적죄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데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무와 뿌리의 관계를 보면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이해를 할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나무와 뿌리는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흙 밖으로 나와 있는 나무와 흙속에 숨어있는 뿌리는 그 위치와 성질이 아주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의지로 지은 자범죄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용서되었지
만 그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의 쓴 뿌리 내적죄성이라는 뿌리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처음 믿고 중생의 은혜를 받았을 때 내적인 죄성도 다 없어진다는 이론은 잘못된 이론인 것이다.

 

2) 점진적 성화설

이 이론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현세에서는 아무리 예수 잘 믿어도 내적인 죄성문제가 해결 안 되고 죽을 때 되어서나 온전히 성화가 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인간의 내적 죄성과 인간의 연약성에 대해 잘 구분을 못해서 생긴 것이다.

분명히 내적 죄성은 믿음으로 거듭난 신자 속에 남아있는 죄의 쓴 뿌리 또는 악한 성질을 말한다. (혈기, 음욕, 미움, 교만 등) 그리고 연약성이란 몸이 약해서 병드는 것, 기억력 부족, 이 세상 살 동안 시험, 유혹을 만나는 것, 정상적 인간이 갖고 있는 식욕, 성욕, 휴식욕 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갖고 사는 일 등 인간의 기능적인 한계성을 말한다.


성결의 은혜는 어디까지나 거듭난 신자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혈기, 음욕, 교만 등의 내적인 죄성을 정결케 해주는 은혜이지, 인간의 연약성까지 없애주는 그런 은혜는 결코 아니다. 분명 인간의 연약성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가야만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내적죄성과 연약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이 두 가지가 다 없어져야 성결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점진적 성화설이 나오게 된 것이고 믿음에 의하여 순간적으로 얻어지는 성결의 은혜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는 심각한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다.

 

3) 고행 주의설

일명 수도원 주의 또는 신비주의자로서 ‘거듭난 신자의 내적인 죄성은 철저한 인간의 노력, 즉 기도, 금식, 절제 등의 고행으로 해결 된다’는 이론이다. 물론 믿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한 신앙생활을 함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그 자체는 조금도 잘못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갖고 있는 자범죄든지 아니면 거듭났으나 미음 속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원죄의 부패성이든지 죄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고행 등으로 결코 해결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엡2:8~9)


오래 전에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간 적이 있었다. 어떤 장로교 목사님이, 목회자이면서도 자꾸만 마음속에서 음욕이 생각과 말로 쏟아져 나와 고민 고민하다가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 와서 40일 동안이나 금식기도를 해 본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내가 금식할 때는 배도 고프고 해서 음란한 생각이 잘 안 나오다가 금식이 끝나 밥을 먹으니까 그만 도루묵이 되었다”라고 솔직히 고백 하였다.


그렇다! 인간의 죄성은 결단코 종교적 고행으로 그 근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행 할 때는 어느 정도 억제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원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인간의 내적죄성은 고행주의로 근본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인한 순간적 성화설

이 이론은 18세기 영국의 요한 웨슬레가 성서와 초대교회 성자들의 기록 등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하여 전파한 이론이다. 물론 예수님을 처음 믿은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점진적인 성화가 따라오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람이 죽어가다가 마지막 죽는 순간, 찰라가 있는 것처럼 ‘거듭난 신자 속에 남아 있는 죄성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단번에 씻어지는 순간이 있다’는 이론이다.

분명히 성경에는 ‘성결의 은혜와 역사’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런데 그러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한 결 같이 순간적 체험으로서의 성결을 교훈하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성령세례

행1:5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 말씀 가운데 성령세례는 결코 점점, 조금 씩 조금 씩 임하는 것이 아니다. 행2:2 “오순절 날이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여기서 ‘홀연히’란 말씀의 뜻은 국어사전에 ‘뜻하지 아니하게’ ‘갑자기’라는 뜻으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결의 은혜는 단번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2. 마음의 할례

골2:11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롬2:29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할례 역시 오늘 조금 할례 받고 내일 또 조금 할례 받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자 어린 아이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는다.

그런데 할례는 단번에 “싹!” 받는 것이지 오늘 조금 받고 내일 조금 받는 그런 성질의 내용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울 방학 때 남자 초등학생들이 비뇨기과에 가서 할례를 많이 받는다. 아이들은 할례 수술을 받고 며칠은 불편하고 아파서 아주 죽을 라고 한다. 그런데 만일 그런 할례를 오늘 조금 받고 내일 조금 받으라고 하면 아이들은 다 도망 가 버리고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결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이지 결단코 조금 씩 조금 씩 점진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3. 십자가 죽음

롬6:6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롬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이 말씀 가운데에도 ‘멸하여’ ‘단번에’라는 말씀은 조금 씩 조금 씩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함이 아니요 순간적으로 완성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인간의 상식을 떠나 성경으로 돌아가서 잘 연구해 보면 ‘거듭난 신자 속에 남아있는 내적죄성이 죽을 때 까지 조금 씩 조금 씩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이론은 결코 맞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를 한다든가, 날마다 믿음을 지켜나간다거나, 마귀와 영적을 싸움을 한 다든가 하는 일은 날마다 계속해서 해야 할 일임을 가르치셨다. 이런 일은 단번에 되는 일도 아니고, 날마다, 계속, 더 점진적으로 강하게 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지은 죄를 용서 하신 다든가(칭의, 중생) 거듭난 신자 속에 남아있는 죄의 쓴 뿌리, 즉 악한성질을 정결케 하시는 일(성결)은 단번에, 순간적으로 되는 일이라고 분명히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성서적 성결의 신앙과 성결의 은혜를 바로 알고 실제적인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성결! 하면 “점점 조금씩 된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단번에 되는 일!”임을 굳게 믿고 소망과 기대 중에 성결의 은혜를 간구하고 사모해야 만 할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성경에 약속(겔36:25)하고 예비해 놓으신 성결의 은혜를 마침내 충만히 부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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